유료 한국의 역사와 문화(삼국유사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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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목적과방법/일연의생애/삼국유사의논의쟁점/삼국유사의성격(특징) 등의 내용으로 구성된 한국의 역사와 문화(삼국유사에 대하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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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역사와 문화◑ 삼국유사에 대하여 Ⅰ.서론 1.연구의 목적과 방법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와 더불어 고대 사적의 쌍벽으로 불린다.서로가 가지고 있는 가치 가 서로 다르고 소중하지만 왜 굳이 삼국유사를 편찬하였나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왜 저자가 삼국사기처럼 여러 사관에 의하여 이루어진 정사(正史)가 아니라 일개 승려의 신분으로서의 일연이 제작을 하였는지 또 삼국사기와는 달리 고조선에 관해 서술함으로 인해 한국의 반만년 역사를 내세울 수 있게 하고 단군신화는 단군을 국조로 받드는 근거 를 제시하여 주는 기록으로 만들어 주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주는지 그리고 향찰로 표기 되어 14수의 신라 향가를 실어줌으로서의 한국 고대 문학사에 실증에 있어서도 가치를 평가받는지 역사서로서의 의미를 갖는 삼국유사가 아니라 역사의 기록 고대 국어사의 연 구 민족의 지침으로서의 사적으로 평가받는지에 대해 살펴보자.y 2.일연의 생애 일연은 고려 후기의 승려로써 초자는 회연(晦然), 호는 무극(無極)목암(睦庵).시호 는 보각(普覺), 탑호는 정조(靜照)이다.속성은 김씨(金氏), 이름은 견명(見明)이다.1206년 지금의 경북 경산에서 태어남.1214년 전라도 해양 무량사에 들어가(9세) 대웅(大雄) 밑에서 학문을 닦음.1219년 설악산 진전사에서 구족계를 받음.1227년 승과에 급제(22세)한 뒤, 현풍의 보당암 주지로 있으면서 참선에 몰두함.1237년 삼중대사(三重大師)가 됨.1246년 선사(禪師)를 더함.1249년 정안(鄭晏)의 청을 받고 남해의 정림사(定林社)로 옮겨와 이 절을 주재하며 대장경을 주조하던 중 남해의 분사대장도감(分司大藏都監)의 작업에 참여함.1256년 윤산(輪山)의 길상암(吉祥庵)에 머무르면서 《중편조동오위(重編曹洞五位)》를 지었음.1259년 대선사(大禪師)가 됨.1261년 원종의 부름을 받고 강화도로 가서 선월사(禪月寺1)의 주지가 되어 지눌(知訥의) 법을 계승함.1264년 영일 오어사에 계시다가 대구 가까운 인흥사로 옮기게 되었는데, 이때 학승 들이 구름과 같이 모여들었다고 함.1268년 운해사(雲海寺)에서 대덕(大德) 100여 명을 모아 대장경 낙성회(大藏經落成會)를 조직, 그 맹주가 됨.1277년 청도 운문사에 주석하시다가 충렬왕에 의해 국존에 추대되었고, 이곳에서 삼국유사의 집필을 시작했던 것으로 추정됨.1281년 몽고군의 일본원정 때, 왕을 따라 경주(慶州)에 머무르며 왕에게 법설을 강론하였음.1283년 국존(國尊)으로 추대되고 원경충조(圓經沖照)의 호를 받음.그해 노모의 봉양을 위하여 귀향.1284년 인각사로 와서 구산문도회를 염.1289년 인각사에서 입적.인각사에 탑과 비석이 남아 있고, 행적비는 운문사에 있다.한편 한국의 고대신화와 민간설화를 수집 정리하고 향가를 비롯하여 불교관계 기사를 수록한 《삼국유사(三國遺事, 5권)》를 지었는데, 김부식(金富軾)의 《삼국사기(三國史記)》와 함께 한국 고대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그 밖의 저서로는 《화록(話錄)》 《게송잡저(偈頌雜著)》 《대장수지록(大藏須知錄)》 《조정사원(祖庭事苑)》 《선문염송사원(禪門拈頌事苑)》 등이 있다.일연을 사람됨이 과묵하여 허튼 말을 하지 않았고 모든 일에 가식없이 진정으로 대했으며 항상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학문하는데 있어서도 특별한 스승을 거치지 않고 스스로 덕을 닦으며 수양하였다.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효성도 지극하여 항상 곁에 머무르기를 원했다.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이론 불교적인 업적과 발행한 저서이다.일연이 쓴 책은 모두 100여권이나 된다고 하니 가히 그 정력과 박식함을 짐작할 수 있다.그러나 정작 그와 관련있는 불교서적은 전하는 것이 없고, 삼국유사만이 남아서 국문학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삼국유사는 고구려, 백제 , 신라 등 삼국의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며 그가 살던 고여 중엽가지의 역사적 사실에 관해서도 언급되어있다.그 중 가장 중시되는 내용은 신라시대의 향가14수이다.여기에 실린 향가는 그 내용에 있어 제각기 다른 특색을 갖고 있다.향가뿐만 아니라 삼국시대의 설화, 신화 등 역사적 야사도 실려 있다.일연은 조계종 부흥기의 초기에 큰 행적을 남긴 위대한 승려이며 특히 오늘날까지 해인사에 보전되어 있는 대장 경각판의 완성에 따른 대법회가 일연의 주재아래 경영되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그러나 무엇보다 일연은 삼국유사의 작자로서 불멸의 광채를 남겼다.현재 경북 군위군 고로면 화수동 인각사에 불탑과 비가 남아 있어 그의 행적을 알려주고 있다.가.주요 활동 ① 대선사(1259년)를 거쳐 국존(1268년)의 지위에 오름.※ 국존 : 고려는 불교를 국가의 정신적 기초로 삼았기 때문에, 뛰어난 승려들을 임금의 스승으로 삼아 왕사(王師)의 칭호를 내리기도 하였다.② 대장경 낙성회 개최 ③ 인각사를 중건하고 궁궐에 돌아와 구산문도회 개최 ④ 몽고의 침입으로 고통을 받던 백성들에게 부처님의 말씀을 전파하여 용기를 심어주고 마음을 하나로 모음.※ 몽고의 침입 : 고려는 xxxx.xx.xx년의 40년 간이나 끈질기게 저항하다가 평화 조약을 맺고 원과 약 100년 동안 교류함.⑤ 삼국유사를 저술함.※ 삼국사기 : 고김부식이 고려 인종 때 저술한 것으로, 유교적 입장에서 고려 이전의 역사를 기록한 역사책.나.일연과 삼국유사 ① 주체적인 관점에서 우리 역사를 기록함.② 단군 신화를 수록하여 민족 시조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킴.③ 우리 민족의 꿋꿋한 정신과 전통이 뚜렷이 나타남.④ 신라 향가 14수와 불교에 관한 풍부한 지식과 신앙 정신, 신화와 설화 수록 ⑤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함께 우리 고대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임.다.배울 점 ① 문화적 주체성을 가지고 우리의 역사를 기록하여 민족 자부심을 일깨워 줌.② 부모 공양을 위해 지위에 연연하지 않는 지극한 효성심.③ 몽고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애쓴 충성심 [출처]-야후백과사전, 네이버백과사전, , ,%7ejyhong1688, Ⅱ.본론 1.편찬배경 그가 쓴 {삼국유사} 제1권 기이편 서문을 보면 그가 이 책을 쓴 이유를 짐작할 수 있 다.내가 쓰노니, 대체로 옛날 성인들은 예의와 음악으로써 나라를 다스렸으며, 어짊과 옳음으로써 가르치되 난삽한 귀신의 일은 말하지 아니하였다.그러나 제왕들이 일어날 때에는 하늘이 준 명령(부명과 도록)을 받고 보통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은 뒤에야 큰 변 란을 기회로 삼아 큰일(대기와 대업)을 이루었다.그러므로 하늘의 계시(하도와 낙서)가 있은 후에 성인이 나왔으며, 또한 무지개가 어머니(신모)를 둘러 싼 연후에야 성인(복희 씨)이 나왔다.(중략).요 임금은 잉태된 지 14개월만에 태어났고, 위인(패 공)은 용과 연못이 교합한 이후에 태어났다.이 밖에 많은 일을 어찌 다 기록할 수 있겠 는가? 그러므로 우리나라 삼국의 시조들이 모두 신기한 일로 태어났음이 어찌 이상하겠 는가.이 신기한 일(신이편)을 다른 글보다 먼저 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위에서 인용한 글의 요지는 항상 성인이 태어날 때는 신비한 징조가 나타난다는 말인 데, 이 글 다음에 이어지는 글이 바로 고조선에 대한 기록이다.위서에 말하기를 2 년 전에 단군 왕검이라는 이가 있어 아사달 산에 도읍을 세우고 개국을 하니 이름이 조선이요, 중국의 요와 같은 시대이다.옛 기록에 말하되 옛날 하 느님(환인)의 서자 환웅이 인간 세상에 내려가고자 하므로 아버지가 자식의 뜻을 알고 삼위 태백을 내려다보니 홍익인간을 할 만 하므로 하늘 도장 세 개를 주어 가서 다스리 게 하였다.이에 환웅은 3 명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아래 내려왔으 니, 이것이 신시요 이분이 환웅 천황이다라고 하였다.우리나라 최초의 나라는 고조선이요, 그 시조는 하느님의 아들 환웅이요, 그가 하늘에 서 내려와 나라를 세운 것이 중국 요 임금과 같은 때라는 것이다.이것이 서문에서 말한 제왕이 나타날 때 신비한 일이 일어나는 법이요, 우리 역사의 첫 번째 신비한 일이라는 것이다.이제 승려 일연이 역사책을 쓴 이유가 분명해 진 것이다.당대 최고의 정신적 지주로서 국난을 당하여 민(民)이 피폐했을 때 그가 할 수 있었던 역할은 민족의 자긍심 을 살리는 일일 것이요, 그는 역사책 서술을 통하여 그에게 부여된 역할을 하고자 했던 것이다.흔히들 {삼국유사}는 김부식이 지은 {삼국사기}와 비교되기도 한다.김부식이 귀족 중심의 합리적 유교정치라는 기대 속에서 {삼국사기}를 저술하였다면, 일연은 민족 의 위기를 신비, 불교, 민중의 동화를 통하여 극복하고자 {삼국유사}를 저술한 것이다.따라서 {삼국유사}가 민중과 함께 하며, 불교 기사가 많고, 자주성이 강조됨은 당연하다 고 할 것이다.출처-고전실/해제-일연의%20삼국유사.htm 2.구성과 체제 <삼국유사>는 5권 9편목으로 구성되어 있다.권1은 왕력 제1과 기이 제1 권2는 권1기이 의 후속편,권3은흥법 제3과 탑상 제4, 권4는 의해 제5,권5는 신주 제6,감통 제7,피은 제 8,효선 제9로 이루어져 있다.이 9편목은 서로가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있으므로 전체와 부분, 부분과 전체라는 틀속에서 이해해야 한다.제1엔 고조선 이하 삼한, 부여, 고구 려와 통일 이전의 신라 등 국가의 흥망, 성쇠, 신화, 전설 등을 기록, 제2는 문무왕 이 후부터 경순왕까지의 신라 및 백제, 후백제 등의 기사, 제3은 신라를 중심으로 하는 불 교의 수용 과정과 융성 및 고승들의 행적에 관한 이야기.제4는 사기와, 탑과 불상의 유 래에 관한 내용으로서 모두 31항목.제5는 원광을 비롯한 저명한 승려들의 설화로서 14 항목으로 구성, 제6은 밀교의 이적과 이승들에 관한 내용, 제7은 신앙의 감흥과 영험에 관한 이야기, 제8은 숨어사는 승려들의 행적, 제9는 불교적인 선행과 부모에 대한 효도 에 관한 미담 5편이 수록, 제3 이하의 편들은 불교와 관련된 것이 대부분이며, 왕이나 귀족들이 아닌 승려들과 이적 등의 이야기다.그러나 일연은 이 삼국유사에서 역사와 불교 그리고 고대 문화사를 복합적으로 다룰 수 있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특히 삼국 유사의 체제는 중국의 삼고승전과 유사성이 있 다.특히 제3 이하가 삼고승전과 유사한 점이 많아 열전의 체제에세는 벗어나 있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불교 신앙과 국가 사회를 혼융의 일원적 사안으로 파악한 점에서 볼 때, 삼고승전에 비해 상당히 진취적인 면모가 있었던 것으로 평가된다.또한 특이한 사 건을 묶어 놓은 겨우도 보아서 각편은 비슷한 등장 인물을 한데 묶어 연속된 편에 배치 함으로써 등장 인물을 체계적으로 분류하려 했다.주-일연, 김원중 역, 2002; 삼국유사, 서울: 을유문화사 3.삼국유사의 논의 쟁점 ① 고조선은 과연 실제로 존재하였을까?? 삼국유사에 실린 고조선에 관한 사료들은 신빙성이 떨어지는 신의적인거나 미신적인 자료들이 대부분이다.또 삼국유사에서 인용한 참고고서가 현재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고조선의 실제 존재에 대한 의문을 품을 수 있다.② 과연 일본은 왜 일제시대에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남겼을까? 일제 강점기에 일본은 민족 말살 정책을 통하여 각종 역사서를 불태우고 없애버림으로써 독립에 대한 의지를 꺾어 버리려 하였다.하지만 삼국이전의 역사를 제외한 삼국사기와 단군 조선의 역사를 신화로 서술한 삼국유사는 남겨놓게 되었다.③ 동북공정에 관한 것 최근 일부 역사학자들이 압록강 이북(만주)에 있는 고구려와 발해유적지를 답사하려다 중국 정부에 의해 현장 접근을 저지당한 사건이 발생했다.중국 정부는 수년 전부터 이같은 접근 제한조치를 시행하고 유적을 정리하여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게 하려는 작업을 하고 있는것으로 알려졌다.4.삼국유사의 성격(특징) 1) 삼국유사의 편찬 동기와 목적 일연이 삼국유사를 쓴 목적은 바로 자주 의식의 소산이다.일연은 그 당시 고려 전기의 지식인들이 주도하는 사회가 지나친 사대주의로 일관해 중국 문화의 주변 혹은 들러리에 불과하다는 의식을 비판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고려가 떠받들던 중국 송나라가 망하고 중국인들이 그토록 무시하던 몽골족이 새롭게 원나라를 세운 사실은 거대한 충격으로 다가왔다.사실상 일연의 삶은 몽골의 침략에 따른 내정 간섭과 상당히 관련된다, 그러나 일연은 삼국유사를 통해 민족 자주적 입장에 서서 우리나라가 중국에 버금갈 만한 유구한 역사 민족임을 드러내려 하였다.특히 삼국사기가 유교의 도덕적 사관에 의지한 편협 된 시각에서 저술된 것이라고 판단한 일연은, 자신이 승려였던 만큼 불교 설화 등을 비롯하여 다소 황당한 것처럼 보일 만 한 내용도 기록하여 삼국사기에 빠진 부분을 보충한다는 자신의 취지를 그대로 보여주려고 하였다.이러한 그의 태도는 탈 유가적 가치관에 바탕을 둔 것이다.그의 민중 의식은 인간 평등이라는 자신의 불교적 가치관을 근본으로 하면서, 피폐한 당시 사회에 대두된 민중에 대한 자각을 그 목적을 두고 있다.주-일연, 김원중 역, 2002; 삼국유사, 서울: 을유문화사 2)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비교 삼국사기 <저자> 왕명을 받든 10여명의 편찬위원들이 편찬한 정사(관찬) <체재> 중국에서 사용하는 기전체 방식을 도입하여 왕실, 통치자 중심으로 편찬이 됨.<사회적 배경> 고려 인종시기-국외에서는 금의 고려에 압력으로 인한 북진 운동의 발현하고 있고, 국내에서는 묘청의 난으로 인한 민심의 분열 <저술 목적>-묘청의 난으로 인한 민심의 재수습-국왕중심의 중앙집권체제 강화 <서술내용>(자료인용) 자료인용에 있어 대부분 중국측 기록만 인용했을뿐 우리나라의 기록은 소홀히 처리했으며, 또 논지의 전개에 있어서도 대부분 자기의 유학자적 주관으로 취사 논단한 경향이 있음.<저자의 역사 인식> [김부식]-이상적인 유교정치의 구현.-역사를 교훈이나 후세의 귀감으로 파악하여 역사서술을 현실비판의 도구로 삼음.-단순한 개인주의적 사관이 아닌, 멸사봉공의 의무와 도리를 강조한 국가의식을 강조-역사는 인간의 노력으로 새롭게 만들 수 있다.<역사적 의의> 인종 23년에 고려 귀족문화를 정리하고 강렬한 국가의식을 표출하는 가운데 중국의 역사관을 수용하면서도 독자성과 융통성을 강조하여 현실긍정과 합리성이 두드러진 사서이다.삼국유사 <저자> 일연이라는 개인이 편찬한 사찬서(사찬) <체재> 저자의 관심 각도에 따라 주제를 자유로이 끌어들여 왕실, 민중 가리지 않고 모두 대상으로 하여 수록함.<사회적 배경> 고려 충렬왕시기-무신정변과 몽고의 침공 그리고 압제.<저술 목적>-유교정치의 재확립 목표-정신적 기준을 찾기 위한 과거의 전통의 재인식 <서술내용>(자료인용) 자료의 인용범위가 중국측 기록보다는 우리나라의 고문서와 민간 기록을 많이 인용하여 우리 민족 기원의 원형 보존에 주력한 경향이 나타나고, 전개에 있어서도 의문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소주를 달아 그 출전을 인증하는 듯 다분히 자기의 주관적인 논단을 배제한 객관적인 선택을 취함.<저자의 역사 인식> [일연]-신이의 강조-유교의 도덕적 합리주의사관에 대한 비판적 태도-불교적 신화적 세계-역사에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한다.<역사적 의의> 민족 자주성과 문화의 우위성을 내세우고자 함.외세의 압제에 대항하여 그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힘의 원천이 자기 전통이라는 강한 확신이 나타난 사서이다.[출처]-일연.정구복 편저, 2 ; 새로 읽는 삼국사기,(서울: 동방미디어)p.406-일연, 이재호 옮김, 1997; 삼국유사,(서울:나랏말)pp6~8-역사학연구소 지음, 1990; 바로보는 우리역사, (서울: 거름출판사),p148 3) 내용분석 권1-기이 제1 기이란 기이한 것을 기록한다는 뜻이다.<삼국유사>에서 遺事라는 제목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이 편은 <왕력>편과 대조하면서 읽는 것이 좋다.고조선을 필두로하여 차례대로 후삼국 까지의 단편적인 역사적 사실을 50여개 항목으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는데, <기이 제1>은 신라 문무왕 이전까지, <기이 제2>는 문무왕 이후부터의 신라와 백제, 가락국 등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특히 맨 첫머리에서도 드러나듯 일연의 <삼국유사> 찬술의도와 서술 태도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서, 우리 개국 시조 단군의 존재를 처음으로 내세우면서 신이로움의 정당성과 비합리주의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으며 민족자주적 시각을 나타내고 있다.일연은 <삼국사기>와는 전혀다른 역사 기술 유형을 보여주고 있으며 문학과 역사의 일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어떠한 정연한 논리의 틀만을 내세우려 하지 않았다.한 왕조의 특이한 사건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는 집필 방식과 신라 건국에 있는 자신감 있는 태도는 그의 확고한 역사 서술 방식을 엿볼 수 있게한다.권2-기이 제2 <기이 제1>을 이어 문무왕 이후의 신라와 백제, 가락국의 기록을 싣고 있다.주로 신라에 초점을 맞추고 호국 불교의 특색이 강한 면모를 다루고 있다.여기서도 일연 특유의 주체적 시각은 두드러지는데, 그의 지식인 다운 고뇌는 그 당시 이승휴나 이규보의 의식과 대체적으로 같은 맥락이지만, 승려라는 특수한 신분에 있었던 저자의 탈 중국적이고 유연한 사고는 곳곳에서 확연히 드러난다.맨 마지막의 가락국기는 지금은 잊혀진 왕조 가야, 김부식에 의해서도 철저히 외면 당했던 가야, 아니 오히려 일본인들에 의해 임나일본부설의 근거가 되는 비극적 왕조 가야에 대한 기록이라는 점에서 눈여겨 볼 만하다.권3-흥법 제3 <기이>편이 <삼국유사>의 전반부라면 <흥법>편부터는 후반부에 해당한다.이 편은 모두 여섯 조목인데 중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워 불교의 도입에 유리했던 나라,말하자면 고구려, 백제, 신라의 순으로 전개된다.불교의 초기 전래는 신라보다 고구려가 훨씬 적극적이었고 백제도 활발했으나, 오히려 오랜세월 불교를 거부했던 신라는 그 양상이사뭇 복합적이다.불교가 우리나라와 중국을 문화적으로 연결시켜주는 중요한 고리 역할을 했던것은 사실이다.그러나 삼국은 대조적인 역사로 인해 문화적 친근성 보다는 이질성이 두드러 졌다.이 편은 황룡사탑의 심초적 크기에서도 짐작되듯 불교가 가장 발달한 신라를 중심에 두고 기술하고있다.일연은 삼국이 불교를 받아들이는 태도에 따라 그들의 흥망성쇠가 결정되었다는 생각을 갖고있었다.특히 도교에 탐닉하여 불교를 외면한 고구려가 멸망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이 편에서 일연은 중국의 <승전>을 많이 모방하고 있고 심지어 어느 부분은 너무도 비슷하지만, 불교 문화사적 관점에서 고승들의 전기와 이적들을 서술한 것은 중국의 것과 그 분위기가 매우 다르다.또 후반부의 거의 모든 조에 실려 있는 찬은 7언절구의 시로서 새로운 멋과 맛을 가져다 준다.탑상 제4 탑과 불상을 만든 이야기가 실려있어 <흥법>의 후속편으로 볼 수있다.이 편에서 일연은 우선 전국 각지에 흩어진 채 남아 있는 탑과 절을 소개하고 그 가치를 서술하면서 삼국 불교의 성격을 보다 차근차근 살펴볼 수 있게 하고있다.일연은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입장에서 문화사적으로나 종교사적으로나 신라 불교에 대해 나름의 자부심을 갖고있었으며, 그런 자부심은 무려 3조 이상에서 황룡사를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는 것으로도 잘 알 수있다.이 편은 전체 31조 중에서 탑상의 건립 사실만을 다루고 있는 것은 겨우 4,5조 밖에 되지 않고 대부분 탑상의 인연에 중점을 두고있다.고운기의 지적대로 일연은 재래 신앙을 포섭하면서 불교 신앙의 차원을 높여 나가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는데, 이런 과정에서 신라인들이 가장 적극적이었음을 실례로 보여주고 있다.국론을 한 군데로 집약시키는 수단으로 불교보다 나은점이 없다는 점을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또한 밀교의 비법을 도입하면서 거대한 불사를 이루게 되는 과정도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권4-의해 제5 <삼국사기>의 <열전>에는 승려들의 편명이 없지만, <삼국유사>는 승려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다루고있다.특히 원광을 비롯하여 자장,원효 등의 이야기 14조를 수록하고 있는 이편은, 신라 최초의 중국 유학생인 원광을 첫머리에 두고있다.청도의 운문사에 머물면서 일연 나름의 사상적 성숙과 답사적 체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들은 대부분 4자성어로 이루어진 제목에서 이 편의 깊이를 더하고있다.또한 해동불교의 자랑인 성승 원효에 대한 기술은 자료에만 지나치게 의존 하지 않고 일연 나름의 느낀바와 직접전해들은 이야기를 중심으로 그려나가고 있는데, 개울과에서 원효가 혜공과 주고받는 대화를 읽으면 인간미 넘치는 원효를 알 수 있다.주목할 점은 여기에 나오는 진표라는 승려는 미륵 신앙을 힘써 추구한 백제 사람이라는 것이며 오늘날까지 백제 미륵 신앙의 토대 확립에 기여한 인물이라는 것이다.매끄러운 전개와 깔끔하면서도 정제된 문체가 구사되어있는 이편은 <삼국유사>가 획득하고있는 문화적 미덕이다.권6-신주 제6 <삼국유사>의 마지막권인 권5의 시작인 <신주>편은 밀교 신승의 사적이라는 뜻이며, 밀교승이 신비스런 주문을 외우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이 편 에서 다루어지는 밀본 법사,혜통,명랑은 모두 밀교승이다.고운기는 이 세명의 고승들의 전기인 <의해>편에 넣어도 된다고 하였는데, 그 테두리는 같아도 세세한 것이 다르다는 인식 때문이다.말하자면 밀교는 불교의 세계를 거쳐 궁극에 이르는 세계라는 것이다.일연은 현세에서 업과 고통을 없애고 복을 구하는 밀교에 대해 비판적이지 않았다.밀교는 비밀 불교 또는 밀의 종교의 약칭으로 진언 밀교라고도 한다.신라인들의 풍류의식과 들어맞으며 시간이 흐르면서 주력신앙을 형성하였다.이는 비과학적,비종교적이며 현세의 바램을 처리하는 주술의 조직이다.그러나<삼국유사>전편에 관련 내용이 있으므로 밀교의 고찰은 불교의 전래와 더불어 응당 뒤따른 신이한 사적의 전개인 것이다.감통 제7 <삼국유사>전체에서 이 편은 불교신앙의 기적편이라 할 수 있으며, <의해>편과 유사하다.평범한 불교신자들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어 신라 사회에서 일반인들에게 훨씬 친숙하게 다가선 불교의 위상을 생생하게 알 수 있다.모두 10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한 조 한 조 읽어 가면 불교의 사고의 중심에 두고 실천하려는 생활정신을 엿볼 수있다.특히 주목해야 하는 것은 도솔가,제망매가,원왕생가,혜성가등의 주옥같은 향가가 수록되어 있다는 것이다.향가는 한국 고유의 정형시가이며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 표기한 시가로서 불교에 대한 내용이 많은데, 이는 향가가 높은 정신세계를 구축됐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향가는 우리문학의 지평을 무한대로 확장시켰다는 의의가 있다.피은 제8 이 편은 제목 그대로 세상을 피하여 은둔하려는 생각을 가진 승려들의 이야기이다.다만 여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삶의 방식으로 내세 정토에 귀의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이 편에 실려 있는 10가지 이야기는 주로 승려들이 속세와의 인연을 끊는 이야기이지만 신충이나 물계자같이 독특한 인물도 다루어지고 있다.출가한다는 말자체에서 알 수 있듯이 승려들은 본래 속세와 떨어져 살아가는 존재들인데 구태여 은둔이니 피함이니 하는 단어가 필요한가 하는 것이다.고려시대의 승려란 세상일과 동덜어져 살았다기보다는 사회에 관심을 기울이고 역사와 함께 호흡하면서 살아간 사람들이었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이들은 고통스런 상황에 부딪쳐 무조건적으로 피하거나 벗어나려는 심리보다는 규범이나 제도를 강요하는 현실에서의 찰나적 일탈이었다.효선 제9 이 편은 지극한 효행의 실천자인 효행에 관한 설화들을 묶은 것이다.일연의 비문에 따르면, 일연은 효심이 매우 깊어 여러차례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을 왕에게 아뢰었으나 번번히 거절 당했다.결국 외롭게 살아온 그의 어머니가 96세로 돌아가시기 얼마 전부터 자신도 70여세가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사라는 중책을 버리고 흔연히 인각사라는 절로 들어오게 된다.이 편에는 다섯가지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는데, 효도에 관한 눈물겨운 이야기가 있어 감명을 주는 내용들이다.석굴암을 지었다는 김대성의 효심이나 효녀 지은, 의상의 수많은 제자 중에서 10대 제자로 손꼽히는 진정 스님등 모두가 불심에 바탕을 둔 지극한 효심의 소유자들이다.여기에 수록된 이야기는 우리 민족의 정서와 풍습을 암시하는 내용이다.그런 면에서 이편이야말로 불교 문화적 설화의 보고인 <삼국유사>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준다.주-일연, 김원중 역, 2002; 삼국유사, 서울: 을유문화사 4) 삼국유사에 대한 평가 [긍정적 평가]-[삼국유사]는 통사(전 시대와 전 지역에 걸쳐 역사적 줄거리를 서술하는 역사 기술의 양식)를 목적으로 한 역사 서적이 아님은 더 말할 것도 없다.그것은 표제가 보여줌과 같이 삼국시대를 대상으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고조선으로부터 시작하여 삼국시대 이전까지의 문헌적 공적을 책의 머리부분에서 시작하여 삼국시대 이전까지의 문헌적 공적을 책의 머리부분에서 주의 깊게 보충함으로써 삼국의 역사적 전총을 뚜렷이 밝히고 있을뿐더러 오늘날 유존되고 있는 문헌의 범위 내에서 우리나라 사람의 손으로 집필된 이 시기 역사의 첫 기록을 남기고 있다.바로 이점은 같은 시대를 대상으로 삼은 [삼국사기]의 경우와 엄격히 구별하여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물론 이 부분의 기록은 많은 경우 중국 문헌들로부터 그 사료를 인용하고 있으나 저자는 가능한 한손을 뻗쳐 우리나라 전래 고기(古記)들의 남은 끝을 한쪽이라도 이용할 대로 이용하였고 선배들의 편언척구하도 해당 편목에 따서 보충하였으며 인용한 중국 문헌까지도 되도록 우리나라 고기들이 인용한 전거를 밝혀 재인용하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역사 문헌으로서의 주체성을 살리고 있다.이와 같이 [삼국유사]의 편찬 체계에서 저자는 고조선을 후일에 통일된 단일민족국가의 최고기원으로 규정하고 이로부터 삼국이전까지 흥망을 거듭한 나라라는 명목을 붙인 수많은 종족들의 역사까지 빈약한 사료로써나마 시대 순 또는 지역 단위로 일괄 나열하여 서두에 붙임으로써 삼국 형성까지의 우리나라 역사 전통을 밝히고 있다.[삼국유사]는 분명히 저자의 의도여하를 불문하고 현존 문헌 중 후일 단일 민족 국가 전통의 역사적 개념을 확립하는 데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음을 부인 할 수없을 것이다.저자는 고조선을 조선족이 창건한 최초의 국가로 인식하는 자신의 역사 전통관과 아울러 고조선과 병립 또는 이를 계승한 여러 나라들을 소개하면서, 더러는 이 나라들의 건국 설화를 토하여 혈연관계를 고등하고 더러는 “조선 유민” 이라는 유대로 묶인 이 나라들의 전통과 종족 이동관계를 간명하게 밝히고 있다.이와 같은 저자가 가진 단일민족의식으로서의 “조선족”의식은 결코 저자의 창견이나 구성에서 나온 것이 아닐 것이요, 그것은 조선 인민들이 가지고 내려오던 오랜 사회의식에 기초한 저자의 인식일 것이며, 저자의 시대까지 남아있던 여러 가지 문헌들의 고증으로부터 얻어진 견해일 것이다.이리하여 저자는 대륙깊이 동북방의 넓은 지역으로부터 반도지역의 최남단에 이르기까지의 광활한 공간과 이에 따르는 유구한 시간을 조선족의 역사 무대로 고증하여 자기저서의 편찬체계에 의해서까지 이를 밝힘으로써 후대에 편찬된 여러 종류의 총사 편찬에까지 하나의 표준과 전통을 지어놓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우리는 [삼국유사]나 [제왕운기]의 인용문들을 통하여 이미 실전된 [구삼국사]“본기”에도 단군, 동명등 이 기간의 사료들이 실렸을 것을 추측할 수는 있으나 그것이 어떤 편찬체계로 또 어느 정도로 실렸는지 알길이 없는 오늘에 있어서 이 부분의 사료를 남긴 공적은 마땅히 [삼국유사]가 지녀야 할 것이다.일연, 리상호 옮김.1999;사진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서울: 까치)pp15~16 [부정적 평가]-삼국유사가 많은 장점을 가졌다 하더라도 결함이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이 책은 역대 유학자와 역사가들이 논평한 바와 같이 허탄한 기사가 많은 것도 사실이요, 그것이 장점의 조건이 될 수 있는 반면에 결함이 되고 있음도 사실이다.따라서 이 책이 가지는 개개의 특징들은 그 평가에서 상반되는 두개의 측면을 가지고 있다.우리나라 역사학계에서 희귀하게도 저자가 불교 승려라는 특징은 유교주의 역사관에서 해방될 수 있는 장점이 되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이 책의 절반을 불교관계 “유사”로 채운 길함을 가져왔으며, 때로는 저자의 신앙심으로부터 나온 강한 주관에서 우리나라의 고유한 전래 설화를 불교색채로 윤색함으로써 그 원형을 왜곡한 폐단도 없지 않다.그리고 이 책은 역사 전문가가 아닌 한 선승의 손으로 집필된 만큼 사료의 정리 측면에서 연대의 착오와 인용기사의 소루한점 등 직업적 책임성의 결여에서 나온 결함들이 가끔 있다.그 일례로 분명히 오간이 아닌 범위에서 첫 편 “왕력”에서만 보더라도 전한 지황 원년 “경진”이 “병진”으로 오기되었으며 송 경평 원년은 “계해”인데 “계유”로 되었으며, 백제 무령왕 조의 융은 의자왕의 태자인데 고구려 보장왕의 태자로 기술되는 등 이와 같은 착오는 다른 편에서도 가끔 발견된다.그 뿐 아니라 그 취급 기사의 범위에서는 [삼국사기]의 그것보다도 더 심하게 신라의 사적에 편중하고 있다.이 결함은 [삼국사기]와 함께 문헌 제약으로부터 오는 공통된 원인이기도 하거니와 더욱이 저자는 경주 장산현(지금의 경산)사람으로 그 생애의 대부분을 경상도 일원에서 시종하였으므로 그의 관심이나 견문에서 오는 제약은 저절로 이 지역을 중심으로 한 자료에 편중함을 면치 못하게 되었던 것이다.따라서 저자가 자기 저서의 표제를 “삼국”으로 내세운 것도 어떤 과업으로부터 지정된 표제가 아닐 것이며, 삼국의 “유사”자료에 대하여 그 어떤 균형을 고려해볼 책임조타 없었던 것이다.그렇기 때문에 이택의 내용은 그 자료 문헌의 제약을 별개 문제로 하더라도 저자의 취미나 편향된 지식에 기초하여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그 결과로 이 책이 오늘날에 와서도 때로는 신라중심의 유사 또는 불교 중심의 유사라는 평을 받게 된다.주-일연, 리상호 옮김.1999;사진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서울: 까치)pp19~20 Ⅲ.결론 ◈ 역사적 가치와 그 의의 이 책은 비슷한 시기에 편찬된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함께 현존하는 우리 고대 사적의 쌍벽으로서 삼국을 비롯한 우리의 상대사연구에 있어서 가장 귀중한 문헌이다.[삼국사기]가 공식 사관에 의해 씌어진 것과는 달리 선사 한 개인에 의해 씌어졌기 때문에 유교적 사관에 입각하여 비교적 객관적으로 서술 된 삼국사기에 비해 삼국유사는 설화와 야사 등을 글쓴이의 주관적인 생각으로 서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또한 저자가 승려 인 만큼 불교적 색채가 비교적 짙게 깔려있다는 사실도 간과 할 수는 없을 것이다.하지만 그것을 충분히 극복하고도 남을 만한 값어치를 인정받고 있는 이유는 중국의 우월성을 강조하며 사대주의를 표방한 삼국사기보다는 훨씬 자주적이고 주체적이라는 것이다.그것은 삼국의 역사뿐만 아니라 [삼국사기]가 기록하지 않은 고조선기자조선위만조선을 비롯하여 가락국 등의 역사를 기록함으로써 삼국시대 이전의 우리역사를 중국의 사료인 [삼국지]동이전에 의지해야 하는 궁색함을 면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더 나아가 자칫 따분하고 공감되지 않을 수 있는 역사 이야기를 일연은 아주 솔직하고 재미있게 그려나가고 있다.즉, 좀 더 서민에게 공감될 수 있고 다가갈 수 있는 내용으로 그들 스스로 민족에 대한 자긍심을 가질 수 있게 하였던 것이 저자의 의도는 아니 였을까.또한 삼국유사는 정형시가로서는 최고의 형태인 향가 14수를 기록하는 한편, 불교에 관한 방대한 자료와 민속 신앙 일화 등을 기록하여 국문학의 전총을 발굴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까지도 연구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귀중한 문학 자료인 것이다 [참고문헌] 일연, 김원중 역, 2002; 삼국유사, 서울: 을유문화사 [참고문헌] 일연, 리상호 옮김.1959;사진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서울: 까치) [참고문헌] 일연.정구복 편저, 2 ; 새로 읽는 삼국사기,(서울: 동방미디어) 일연, 이재호 옮김, 1997; 삼국유사,(서울:나랏말) 역사학연구소 지음, 1990; 바로보는 우리역사, (서울: 거름출판사) 참고자료 고전실/해제-일연의%20삼국유사.htm 야후백과사전, 네이버백과사전, , ,%7ejyhong1688,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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